고교 학점제 시대의 미대 입시

그리날다 전문가 칼럼_고교 학점제 시대의 미대 입시 (1)

고교 학점제 시대의 미대 입시

고교학점제와 대학입시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보인다. 혼란한 마음에 검색해 보아도 시행 관련 내용이 아닌 입시에 관련된 것은 더욱 찾을 수 없다. 그리고 그중 소수인 미술대학 입시는 더더욱 찾기가 어렵다.

막연하지만 조금 빠르게 미래 계획을 세우기 위해 고교학점제 시대, 대입에 필요한 자세를 상상해보자.

단순히 수능이나 내신 점수에 맞춰 대학과 전공을 고르고 대학에 들어가 수업을 들으며 뒤늦게 자기 적성을 파악하는 시대는 끝났다. 그저 성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갔던 그 자세만으로는 성공적인 대학 입시를 치룰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부터는 큰 그림을 그리며 나의 인생, 나의 진로, 나의 장단점을 단계적으로 내려다보는 시야가 필요하다. 나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그것을 위해서는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이 과정에서는 어떤 교과목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 교과목에서 나에게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를 스스로 계획하고 분석하여 판단해야 한다.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확언할 수 없겠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정보와 앞선 상상을 바탕으로 대응 방향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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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로 본격 시행되는 2025년까지는 현재의 대입 전형이 유지된다고 한다. 본격적이고 대대적인 변화는 그 이후겠지만 당장 진로 선택과목과 고교 학점제의 영향을 받은 입시 전형의 흔적들을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홍익대학교는 2022년 입시까지 ‘미술에 관한 교과(진로 선택과목 또는 전문교과)를 한 과목 이상 이수한 학생으로 지원 자격을 제한하였으며, 서울대학교는 ‘2024학년도 신입 학생 전형 예고’를 통해 ‘전공 연계 교과 이수 과목’을 중점적으로 이수한 학생들을 선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직 미술대학은 교과목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교과평가 항목을 들여다보면 교과별 위계에 따른 선택과목 이수 내용과 진로 적성에 따른 선택과목 이수 내용을 첫 번째로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있다.

즉 대학에서는 이미 기존의 내신과 더불어 학생 각자의 진로를 위해 어떤 선택과목들을 찾아 깊이 있게 공부했는지를 평가 요소에 반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물결이 미대까지 밀려온다면, 고교학점제 시행 이후에는 선택과목과 관련된 평가가 절대평가이므로 점수보다는 학생이 선택한 교과목이 모여 이뤄지는 로드맵 자체가 평가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나와 있는 시간표를 따라가며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예술고등학교에서는 고등학교 입학 전(이르면 초등학교 때부터)에 이미 미술이라는 큰 진로를 계획하고 시험을 준비하여 입학한다. 입학 후에도 1년간 어떤 전공을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경험하며 상담하는 과정을 거친다. 예를 들어 예고에서 동양화를 선택하려는 학생이 있다면 동양화를 전공하여 어떤 진로가 있는지, 어떤 방식의 작품들을 제작하고, 입시를 위해서는 어떤 형식의 그림을 그리는지, 그 방향이 나와 맞는지를 두루 살펴 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한 전공 관련 수업과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위한 기본 과목으로 시간표가 구성된다.

동양화를 전공하면 동양화 전공과목과 동양화 드로잉 과목을, 디자인을 선택하면 디자인 전공과목과 디자인 드로잉 과목을 나누어 이수하는 것이다. 예고생들에게 고교학점제는 과목이 조금 더 세분되거나 시간표의 형태가 더 자유로워진다는 정도를 제외하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석차 등급으로 나뉘던 진로 심화 과목에서 절대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내신성적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소수의 예고생이 아닌 대부분의 일반고, 그 안에서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준비해야 할까.

기존의 일반고 미대 입시생들은 학교에 다니며 실기시험 준비를 위해 학원을 병행하며 입시를 준비하였다. 공교육만으로는 학교마다 다른 실기시험의 방향성을 알고 준비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대나 서울대 입시의 변화를 살펴보았을 때, 과거의 방식처럼 단순하게 학교별 실기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는 미대 입시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없어 보인다. 한 학생이 고교 3년간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진로를 탐색하며 준비해왔는지를 선택된 교과목의 구성으로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찍 진로의 방향성을 정해야 하는 것은 물론, 진학 후 기초가 될 필요 과목들을 스스로 찾아 들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양화와 미술 보존을 전공하고 싶은 학생이라면, 동양화와 드로잉 같은 실기 심화 과목은 물론, 역사와 지리, 전통 안료들을 분석할 화학 등의 과목으로 선택과목을 확장 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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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술을 하는 학생의 수가 적은 일반고등학교에서, 동양화나 조소와 같은 소수의 과는 그 진로 심화 교과목을 스스로 알아내어 개설하고 수강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술 진로 심화 과목을 들어야 하는 일반고등학교 학생들은 인근의 예술고등학교나 미술 중점학교에서 필요한 교과목을 찾아 수강하게 된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하게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 있다. 예고나 미술 중점학교의 교실과 교사 수는 한정되어 있고 인근 학교의 학생들을 무한히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그 학교의 수업과 전문성이 높을수록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런 유한성은 그 수업을 들었다는 것 자체가 스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런 스펙을 위해서 예고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고교입학을 하는 것처럼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자격을 가리는 시험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고등학교 생활 동안 원하는 미술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진로에 맞는 수업을 설계해야 하고 그 설계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 하며, 유한한 자리의 수업을 듣기 위한 경쟁이 이루어질 것이며, 그 시간표 자체가 평가의 대상이 될 것이다.

지역적 경제적 정보의 편차가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적 상황에서, 이런 입시의 방향은 그 차이가 결과의 차이로 연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현실적으로 예술이라는 전문성이 강한 영역의 진로 설계를 일반고등학교 교사나 부모가 지도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고교학점제로 인한 변화는 진로 설계를 보다 빨리 구체적으로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신이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보다 빨리 그것을 전공할 것인지 결정하고, 로드맵을 짤 수 있도록 주변의 어른이나 전문가의 조언이 꼭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고교학점제가 잘 이루어진다면 미술을 전공하고자 하는 모든 학생은 어느 학교에서도 이처럼 예고와 같은 시스템으로 진로를 준비하고 배울 수 있겠다고 낙관적으로 상상할 수도 있다.

물론 학생들 개개인의 적성에 맞는 로드맵을 함께 찾고 방향을 제시해 줄 전문적인 교사의 존재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학교에는 가정학습 신청서를 내고 다른 교과목 수업을 빠져가며 학원에 가는 일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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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된 교육과정은 성적순으로 줄을 세워 대학에 입학만 하면 되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학령인구가 줄고 있는 현실에서 학생 개개인을 유의미한 인재로 키워낼 수 있는 환경과 사회적 교육 시스템을 기획하고 투자할 때인 것이다.

학생 개개인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미래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탐색하고 개척해야 할 능동성이 요구되는 시대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지 자신을 스스로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날다 칼럼니스트 김초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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