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해야 한다는 강박(1)

그리날다 칼럼: 공정해야한다는 강박(1)

글: 그리날다 대표 컨설턴트 이상무

오랫동안 미술대학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공정성에 대한 논쟁이었다. 전설처럼 구전되어온 어느 미술대학 입시과정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입시 관리 과정에서 최종 결재권자가 실기 채점표에 대해 문제를 삼고 나섰는데, 같은 응시 작품에 대해 채점위원들의 결과가 정반대로 나온 사례들을 지적한 것이다. ‘어떻게 한 작품에 누구는 최고점을 주고 다른 누군가는 최저점을 준다는 것이 가능한가?’ 이런 결과라면 채점위원의 안목이나 실기고사 자체의 표준화에 문제가 심각한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로 해당 실기 고사는 이듬해 전면 폐지되고 다른 과목으로 대체되었다. 아울러 이 문제의식은 이후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실기고사 무용론의 배경 의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예로 활용되었다.

그런데 예술 활동에서 같은 작품에 대해 전혀 다른 의견과 평가가 불공정한 것인가?
예술영역에서 가치의 다양성과 표현적 개방성을 고려한다면 전문가들의 다양한 평가는 어쩌면 당연하고 고무적인 과정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입시라고 하는 상황에서 보편적인 객관성은 평가도구의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입시에서의 객관성은 어떤 기준으로 담보될 수 있는가? 정답이 존재할 수 없는 예술 과목에서 그 객관성은 복수의 전문가가 형성한 집단적 안목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국 다수의 채점위원이 협의하거나 공동 채점을 하는 방식은 유일한 평가 방법인 셈이다. 여기에서 평가자의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라면 그 이견에 대한 논쟁을 통해 절충안을 찾는 과정이 필요한데, 앞선 예에서는 대학 입학시험의 공정성이라는 도그마에 매몰되어 평가고사 자체의 무용론이라는 방향으로 흘러버린 것이다.

여기서 공정성과 객관성의 개념을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객관성이 개인의 감정이나 선입견을 배제하고 사실에 근거해 평가하고 판단하는 태도라면 공정성은 특정인과 집단의 이익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한 입장에서 정해진 규칙과 기준에 따라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방침이라고 할 수 있다. 객관성이 판단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라면 공정성은 그 기준과 규칙을 적용하는 태도라고 하겠다. 다시 말해 입시에서는 객관적인 기준을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 그리고 그 기준을 어떻게 공정하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방향성이 중요하다. 객관적 기준은 앞에서 전제하였듯이 전문가들로 구성된 채점단의 집단적 의견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공정성에 대한 장치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막고 채점위원으로 편제될 전문가들의 이해 요구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수험생에게 공정하게 입시정보가 제공되는 환경은 쉽게 확보할 수 있지만, 채점위원의 이해관계 관리는 다소 복잡한 문제다. 이미 상피제와 비밀 유지 등의 장치는 마련되어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공정성을 위해 더 중요한 것은 채점단에 참여하게 될 전문가 그룹의 안목과 취향이다. 앞서 전제한 객관성의 요체가 될 평가자들의 집단적 판단력은 결국 개인의 안목이 모인 것이며, 이는 객관적 기준을 구성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 개인적 안목을 발표와 공개를 틍해 공론화하여 수험생들이 보편적으로 접할 수 있는 정보가 되게 관리한다면 어떨까?

미술대학 교수들 중에는 입시 미술학원이나 학부모 등, 입시와 관련된 지인들과 소통하거나 만나는 것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 시도될지 모를 로비나 부정한 청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대학 본부와 입학처가 제도적으로 이들을 지나치게 통제하기 때문이라는 하소연도 자주 들린다. 그러한 걱정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정보공유를 위한 소통을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하게 공개하는 방식은 어떨까? 모든 평가정보와 결과를 공개함으로써 부정한 청탁이나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한 공정성 시비를 증발시켜 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이미 합격작을 공개했던 사례와 평가점수 등의 입시 결과를 공개하는 일부 대학들은 공정성 시비로부터 훨씬 자유롭다.

감추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정보를 완전히 공개하는 방법으로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의견과 안목을 공개함으로서 공론의 장에서 사회적으로 보편타당한 공통의 예술적 안목과 수준을 형성하는 것이다. 예술은 엘리트에 의해 선도되지만,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며 예술이 갖는 전위성은 사회적으로 보편성을 실현할 때 의의를 갖는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21세기 문화강국이라는 세계적 평가를 받으면서도 스스로를 ‘미술에 문외한’이라고 자랑삼는 이들이 많은 한국 사회의 기형적인 미술 콤플렉스는 전문가들이 자신의 안목을 너무 감추어 구름 위로 올려둔 환경에서 형성된 문화예술 엘리트주의 때문은 아닐까?

공정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정답이 불가능한 예술에 객관적 완벽성을 강요하는 것은 마치 시에서 논리를 중시하고 수학적 해법에서 상징을 강조하는 것과 같은 모순적 상황이다. 사회적으로 보편타당한 기준을 만드는 협의를 통해 집단적 안목을 형성함으로써 미대 입시의 과정이 우리 사회의 예술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수단으로 작용하게 하는 지혜로운 기획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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