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날다 칼럼: 공정해야한다는 강박(2)
글: 그리날다 대표 컨설턴트 이상무

전업 작가이자 대학에서 강의를 병행하는 지인이 참석한 모임에서 미대 입시의 실기고사에 대한 화두가 도마에 올랐다. 전공을 희망하는 고3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실기능력의 수준과 난이도가 어느 정도면 적절한가에 대한 논쟁이 펼쳐졌는데, 그는 객관성을 평가하기 위해 석고소묘 같은 고전적인 방식이면 충분하다는 편이었고 나는 학생들의 창의성과 주관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맞섰다. 서로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열띤 토론이 진행되던 중 “고3의 주관성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죠? 변화가능성과 성장잠재력이 큰 미숙한 시기의 주관성을 어떻게 당락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까요?“ 라는 그의 논증으로 화제가 마감되었다. 고3이라는 나이, 인지력을 갖고 미술을 전공하겠다고 나선 지 불과 몇 년의 시기를 거쳐 형성된 그들의 주관적 창의성은 매우 탄성적일 수밖에 없다는 데 자리에 모인 지인들이 모두 수긍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고3의 시기에 사물을 보고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묘사력 정도면 충분하다는 그의 주장은 언뜻 매우 합리적이고 안전한 선택처럼 들린다. 정답이 없는 예술 영역에서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인 형태력과 묘사력‘만큼 채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좋은 기준도 없기 때문이다. 이번뿐만 아니라 이러한 논쟁은 늘 객관성과 공정성을 기준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그 자리를 끝내고 돌아서는 귀가길에 나는 그 안전함의 이면에 도사린, 다시 ‘공정해야 한다는 강박’의 그림자를 되새겨보았다.
그의 주장대로 고3의 주관성은 미숙하다. 하지만 입시에서 우리가 마주해야 할 주관성은 완성된 대가의 그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과 조건을 자기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가능성의 맥락’이다. 생성AI가 보편화되어 인간보다 더 완벽하게 사물을 복제하는 시대에, 미숙하다는 이유로 주도성을 거세하고 ‘채점하기 편한 객관성’의 틀에 창의성을 가두는 것은 온당한가?
결국 문제는 고3의 주관성이 아니라, 그 미숙함 속에서도 반짝이는 가능성을 알아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집단적 안목’의 빈곤과 결과를 책임지기 두려워하는 평가 시스템의 유약함에 있지는 않은가?

미술대학 입시에서 ’재현과 창의성‘ 사이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에 대한 논쟁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은 오래된 논쟁거리였다. 그 무게 중심을 평가의 객관성에 두느냐 창작적 주관성에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밖에 없는 양 끝에 위치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결과에 치우친 경로와 결론보다 입장의 출발점에서 모색해야 한다. 공정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예술적 자율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AI시대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물론 앞선 지인의 주장처럼 시간 전문교육을 받기위해 최소한의 객관적 표현능력은 필수적인 감각이다. 그런데 현행 미술대학 실기고사에 응시하는 수험생들의 수준은 지나치게 상향 평준화되어 있고 수험생의 선호도가 높은 대학일수록 그 수준은 놀라운 수준이다. 도무지 제한된 시간 안에 그렸다는 게 믿기지 않을 수준의 정확도와 완성도를 보여주는데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고 있지는 않은가?

수 십년전 우리나라 대입제도에는 예비고사와 본고사라는 시스템이 있었다. 만일 미대입시에서도 객관적 재현능력을 묻기 위한 기초적인 통과시험을 국가가 관리하고 일정수준에 도달한 학생들에게 입학 자격을 부여한다면 어떨까? 국가 관리가 어렵다면 현재 각 대학들이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실기대회를 대체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객관적 표현을 기준으로 예비고사를 통과한 학생들이 대학별로 추구하는 본고사를 보게 하는 것이다. 이미 객관적 표현력을 갖추었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대학별 고사는 더 자율적이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런 제안에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치러야 할 시간과 경제적 부담을 걱정하는 반론이 예상되지만, 9월부터 해를 넘긴 1월 말까지 진행되는 현행의 6곳 수시전형과 3곳 정시전형은 부담이 없었나 돌아볼 일이다.
대전환의 시대, 미술대학 입시는 모든 제도적 가능성을 열어두고 객관성과 창의성을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을 상상해야 하는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