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해먹고 살아요?

뭐 해먹고 살아요?

미대를 진학하겠다는 자녀를 둔 부모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대량 실업의 시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로봇 기술로 인해 갈수록 양질의 직업이 없어진다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어쩌면 이 시대 모든 부모들의 질문이 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지나간 제자들을 떠 올린다. 지금까지 연락이 닿거나 현재의 근황을 알고 있는 얼굴들을 찬찬히 소환하여 그들의 현재 삶의 모습과 직업을 정리하고 그들이 미술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지 대입해본다.

공교롭게도 그 스펙트럼은 너무나 다양하여 많은 이가 선망하는 소위 명문대학 진학이 현재 삶의 모습과 비례한다고 보기 어려운 형편이다. 물론 미시적으로 학맥이 출세에 영향을 미친 변수는 존재했겠지만, 그것이 절대적 영향력이라고 보기에는 전혀 다른 표본들이 떠오른다. 그 결과는 분명 취업이나 출세에 대학의 평판이나 전공 말고 다른 변수가 더 크게 작용했다는 방증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리날다 칼럼_뭐 해먹고 살아요?

90년대에 미대를 졸업한 내 또래의 친구들은 가장 많은 수가 온라인 비즈니스에 수용되었다. 웹 디자이너가 되고, 아이티 관련 업무에 취업하였으며 그걸 기반으로 현재까지 밥벌이하는 친구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한때는 부모들에게 그렇게 사회적으로 성취한 친구들을 예들어 ‘비전’을 제시한 적도 있었으나, 그 예는 온 세상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행하는 시대적 파고에 의한 특수성이라는 건 미대 출신뿐만 아니라 당시 모든 다양한 전공의 대졸자들도 그 분야로 유입되었다는 공통점으로 쉽게 설명된다.

이쯤에서 시선을 좀 달리, 나처럼 90년대에 미대를 졸업하고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 성취를 이룬 친구들이나, 당시에는 자신이 원하는 명문대에 진학하지는 못했으나 소위 좋은 직장에 진입한 제자들, 또 명문대에 진학하고도 전혀 다른 비관련 분야의 일로 성취를 이룬 이들의 공통점을 찾아 그들의 성취 비결이 무엇인가 정리하여 본다. 표본도 표본이려니와 그들의 공통점을 계량화할 정량적 도구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온전히 나의 직관에 의할 수밖에 없는 한계는 인정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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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판단하는 그들의 가장 주요한 경쟁력은 전공을 선택하는 과정에서의 자기 결정권이었다.

아직은 미대를 가겠다는 자녀에게 의심과 불안감으로 걱정이 앞서는 부모들이 많은 사회적 분위기에서 자신의 선택을 밀고 간 추진력, 어쩌면 당연할 자기 결정권이지만, 말 잘 듣는 수동적 청소년이 미덕이자 목표인 우리 교육 환경에서는 큰 용기와 결단력을 필요로 한다. 그들은 그런 최초의 선택과정에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고 실행에 옮김으로써 자존감을 형성하는 청소년기에 스스로 큰 잠재력을 잉태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그들은 일정 기간의 미술 수업 과정에서 종합적, 입체적으로 사고하도록 훈련되었다. 보통 교과목에서 가지게 되는 논리력과 추론 능력, 암기력과는 차별화된 능력이다. 직관적이고 종합적인 판단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실습 과정에 오래 노출된 그들은 학과 성적만으로는 계량할 수 없는 통찰력을 얻게 되었고 미대진학과 졸업이라는 훈련 과정을 통해 우수성을 입증해 온 셈이다.

세 번째 그들의 경쟁력은 실천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미술수업은 관념이나 이론이 아니라 보는 활동, 사고하는 활동을 거쳐 그리거나 만드는 작업으로 실행함으로써 완성된다. 온전히 자신의 수작업과 노동에 의해서만 완수되는 이 전 과정을 통해 실천의 습관을 체득하게 된다. 상상이 아니라 실천의 능동성을 습관으로 체득한 이가 어느 분야에서든 성공의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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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들의 공통점은 미술을 전공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모든 미술 전공자들이 같은 결과를 내야하지 않느냐는 의문에 대해서는 다른 모든 분야의 교육과정과 결과를 떠올려 보라고 답하는 수밖에.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자존감과 종합적 사고, 실천력을 체험하는 과정의 훈련시간을 거쳐 성장한다는 점, 그 것이 본질적인 그들의 경쟁력이라는 점은 명문대 진학과 같은 한시적 성취와 비교되지 않는, 훨씬 크고 값진 자양분을 얻게 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일자리’는 없어지고 ‘일거리’가 남을 거라는 표현을 들었다. 이미 우리 앞에 와있는 대량 실업과 노동 탄력성의 시대환경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노동의 종말’에서 제러미 리프킨이 미래의 대안으로 제안한 인간성 회복의 목표를 상상해보면, 미술 실기 수업 과정은 다른 어떤 지적 성취에 비교해 미래의 인류가 가져야 할 인간성과 덕목에 매우 근접한 훈련 도구가 아닐까?

그리날다 칼럼리스트

그리날다 칼럼니스트 이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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