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글쓰기

그리날다 전문가 칼럼_예술가의 글쓰기 (1)

예술가의 글쓰기

최근의 국정감사에서도 여전히 대학입시 자기소개서 표절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대교협이 국감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간(2016~2020학년도) 자기소개서 표절로 불합격된 학생은 7907명이란다. 올해 신입생이 치른 2020학년도 입시만 해도 1382명의 수험생의 자기소개서가 표절 의심으로 적발되었고 이 가운데 95%인 1308명이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언론은 입시 부정의 가능성이 큰 자기소개서 중심의 학생부 종합 전형 때리기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그리날다 전문가 칼럼_예술가의 글쓰기 (2)

그런데 이 대목에서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매년 표절로 의심되는 천여 건을 제외한 수만 명의 수험생들은 온전히 혼자의 힘으로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제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의심 대상 95%가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면 표절 의심으로 분류되고도 합격한 5%의 수험생들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주변에서 최근 수험생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교사와 경험 있는 선배들, 이웃 친지를 막론하고 첨삭을 해 줄만한 지인들을 동원하는 것은 물론, 필요에 따라 사교육의 힘도 빌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도와 수준의 차이일 뿐, 처음 기획부터 제출까지 아무에게도 검토 받지 않고 자기소개서와 각종 입시 서류를 작성하는 수험생이 있을까?

표절로 의심되는 사례는 기존의 문서 정보와 학생의 서류를 비교 검증하는 자동 시스템에 걸렸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이미 생산된 글, 온라인이나 각 대학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어 있는 텍스트를 잘라 붙인 것으로 의심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에 존재하던 데이터가 아니라 누군가 대필을 해 준다 하더라도 여기서는 걸러낼 수 없는 것 아닌가?

매년 학생부 종합 전형에 응시하는 학생들이 물어오는 자기소개서와 미술 활동 보고서를 검토하면서 느끼는 점은 고3 학생들의 평균 글쓰기 능력이 매우 빈약하다는 것이다. 온라인이나 구어체에서만 사용되는 줄임말과 은어, 비어 등은 예사이고 지나치게 장황한 중, 복문에 주술 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운 비문도 잦게 발견된다. 한 발 더 나아가 문법적 오류는 바로잡았다 하더라도 자신이 피력하고자 하는 방향에 일관성이 없어서 읽고 나면 전체 요지가 정리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을 1000자 내외로 소개하는 글에서조차 이렇게 방향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서류심사 결과는 너무나 자명할 수밖에…

과거의 학생들은 달랐을까?
민망한 이야기지만, 나는 학생들의 생활 기록부 세부 특기사항에 어이없는 비문과 오류투성이 기록을 남긴 미술교사를 자주 목격한다. 수많은 미대 졸업생들 중에서도 최정예라 할 만한 그들의 임용과정을 미루어 보면 과거의 미술학도들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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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현상의 이유를 우리의 오랜 유교문화의 심리적 뿌리에서 찾는다. 그것은 글쓰기가 곧 학업능력이라는 사회 심리적 환경이다. 읽기와 쓰기 능력이 좋은 학생이 공부를 더 잘 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성취도가 상당 부분 암기 능력에 의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글쓰기 능력과 학업 능력이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는데도 우리는 그러한 선입견을 내재화하여 온 것이다. 여기에 미술과 음악 등의 실기 능력은 독자적이고 특수한 감각이라는 인식이다. 이러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두 가지가 만나서 ‘글을 못 써도 실기를 잘 하면 유능하다’는 합리화가 형성된 것은 아닐까?

물론 글쓰기가 예능 실기능력과 별개의 감각인 것은 사실이나 미술을 전공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려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대학 진학은 궁극적으로 시각 분야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진 과정이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문화 전문가가 되겠다는 의지인 셈이고, 다양한 사회적 환경과 문화에 대한 추상적 담론을 이해하고 설파할 수 있는 지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그 사회의 교양인들이 가져야 할 교양의 필수 덕목 중 하나가 문해력과 작문 능력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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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자기소개서를 온전히 써내기 어려운 학생이 대학에 진학해서는 상황이 좀 나아질까? 물론 다양한 인문학적 경험과 전공체험을 통해 인식이 확장되는 만큼 능력이 발전해 가겠으나, 갖추어 놓지 않은 읽기와 쓰기에 대한 습관과 교양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과 기회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미술을 전공하겠다고 입문하는 고등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제안이 있다.

우선 다양한 독서를 하라는 것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면 어떤 책이라도 좋다. 중요한 조건은 의무감으로 읽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것을 선정하는 일이다. 읽는 활동은 저자의 인식을 이해하고 따라가는 과정이다. 그 추상적 동기화 과정은 인식의 수준을 저자의 반열로 점점 견인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게다가 다양한 저자들의 글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들의 세련된 작문을 습득하게 된다는 이점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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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다양한 글쓰기를 직접 시도하라는 권유다.


가장 좋은 습관은 일기인데, 자신의 가장 가까운 하루의 감상과 기억을 글로 옮기면서 작문을 경험하게 되는 효과도 크지만, 이후 그 기록을 다시 꺼내 읽는 과정은 자신의 글을 객관적으로 대하는 경험을 하게 되고 다음번 글쓰기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역할을 할 것이다.


글쓰기는 인간이 말하기의 직후에 갖게 되는 이성 능력인 만큼 어려서 형성된 글쓰기 능력은 후 일 더 빠르고 높게 학문적 성취를 만들어가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학생부 종합 전형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차근히 글쓰기를 연습하라. 아니 미술을 전공하고 싶은 고등학생이라면 교양인으로서의 준비를 위해 글쓰기를 익혀두시라.

그리날다 칼럼리스트

그리날다 칼럼니스트 이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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